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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보다 중요한 제주4.3사건. 이는 민주화운동도 폭동도 아닌 대한민국 학살 사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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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보다 중요한 제주4.3사건. 이는 민주화운동도 폭동도 아닌 대한민국 학살 사건.

모비모비 2018. 4. 3. 10:47



2014년 4월 3일에 작성된 글을 오늘 날짜로 수정해서 다시 올립니다.

약간을 길더라도 시간을 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주4.3사건의 경과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대적 배경 : 1948년 4월 당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에 미군에 의해 통치되던 시절이다.

 

1. 발단

 

1) 1947년 3월 1일, 기마경찰이 탄 말의 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발생

2) 주변사람들이 이에 항의하고자 돌을 던짐

3) 습격으로 오인[각주:1]한 경찰은 총을 발포하여 6명이 사망

4) 이를 계기로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당은 반경 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

5) 3.10 총파업을 주도하여 166개 기관 41,211명이 참여 (제주출신 경찰 66명)

 

 

2. 경과

 

1) 미군정

  1. 3.10 총파업 이후 미군정에 의해 동원된 경찰이 파업 주모자 검거작전을 펼침

  2. 이틀만에 200명 연행, 2,500명 구금·고문

  3.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투쟁 결정,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에 350명의 무장대가 공격활동을 펼침

  4. 미군정과 투쟁단 간의 협상의 기회는 있었으나 번번히 결렬되고 잦은 무력충돌이 발생

 

2) 이승만 초대 대통령 집권 이후 (1948.08.15)

  1.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여 병력을 증원하고,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 선포 (중간산지대 통행금지)

  2. 1948년 11월부터 중간산마을에 대한 강경진압으로 무고한 인명피해가 발생, 그 결과 약 2만 명의 주민이 터전을 잃고 무장대가 됨

  3. 진압부대가 꾸준히 과잉진압을 펼치며 시민의 희생을 일으킴

  4. 1949년 3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 설치로 진압과 함께 선무작전 병행. 귀순시 용서한다는 사면정책으로 주민들이 하산

  5. 1949년 6월, 무장대 총책인 이덕구가 사살되고 무장대 사실상 괴멸

  6. 1950년 6.25 전쟁 발생으로 인해 주요인물들에 대한 사형이 이루어짐

  7. 1954년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며 종료됨

 

*신고 접수 결과 15,100명의 사건 희생자 발생. 신고되지 않거나 미확인된 희생자가 굉장히 많을 것으로 예상됨

*군인 180명, 경찰 140명 전사

 


 

 

 

위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제주4.3사건은 비록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남로당의 개입으로 시작된 사건이지만, 명백한 것은 정부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잉진압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부나 마찬가지이다.

 

<제주4.3평화공원 전시>

 

비록 시대적으로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에 대한 갈림길에 있었으며, 미군정 아래에서 민주주의로 그 틀이 치우친 시점이었지만 해당 사건에서 철저히 진압되었어야 할 사람들은 무고한 제주도민이 아니라 해당 사건을 발생시킨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 소속의 주동자들이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신고만 15,100명. 따지고 들자면 2만명도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광주에서 발생했던 5.18운동과는 그 규모부터 차이가 수십배 난다. 물론 희생자의 수 차이로 그 의의를 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5.18로 인한 희생자에 대해서는 크게 추모하면서 4.3사건으로 인한 정말이지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처우는 너무나도 열악하다고 느껴진다.

 

 

<당시 피난생활을 했던 흔적>

 

당시 제주도민이 모두 공산주의를 지향했던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럼에도 모든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마치 빨갱이로 규정짓고 거의 학살에 준하는 활동을 한것은 명백히 잘못됬다는 것이다. 분명 시대적 배경에 의한 진압이었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마을을 초토화 시키는 방식의 진압은 일본의 우리나라 침략과 다를게 없다.

 

그나마 2000년 1월 12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이 사건은 일반인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게 여겨지는 부분이다. 비록 '민주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한 항쟁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항쟁을 했다고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처절한 것이다.

 

같은 민족을 학살한 대표적인 사례.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과오이다.

 

각종 교과서에서는 이 사건을 기껏해야 한문단으로 설명하고 지나치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이미 제주4.3평화기념관이나 평화공원 등을 통해서 꾸준히 추모활동을 하고 4.3사건에 대해 교육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3월24일 드디어 4.3희생자 추념일이 지정되었다.


사건의 발단과 관련없이 정말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 가벼운 추모라도 합시다.

  1. 오인에 의해 발포하였다고는 하지만, 해당 내용은 어느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공식적으로는 오인에 의한 발포이다. [본문으로]